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나는 왜 무기력을 되풀이하는가 - 에리히 프롬 (2)



나는 왜 무기력을 되풀이하는가 - 에리히 프롬 


03 - 자유는 진짜 인격의 실현이다.

p61 피곤한 사람, 절망에 빠진 사람, 염세주의자는 자유에 도달할 수 없다. 피곤할수록, 절망에 젖어 있을수록, 염세적일수록 얻을 수 있는 자유는 줄어든다. '열정적인 사람'만이 자유로울 수 있다. 심리학적으로, 퇴보에 빠지지 않고 전진하고 진보하려 노력하는 사람만이 자유로울 수 있다. 독립과 동시에 주변 사람들에 대한 사랑을 포함하는 진보를 추구하는 사람만이 자유로울 수 있는 것이다.


p73 요약하자면 우리는 자신을 이해하고 사랑하고 인식할 수 있을 때에만 타인을 인식하고 이해하고 사랑할 수 있다. 하지만 의식적 헌신이 곧 자신의 사적 공간을 포기한다거나 타인의 사적 공간을 침해한다는 뜻은 아니다.

사랑은 인식이지만, 또 인식이기 때문에 타인에 대한 존중이기도 하다. 우리가 자신에게 투명하다면 타인의 불투명성은 인간의 가능성 안에서 투명해질 것이다.


1.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

나는 기독교인으로 자유라는 단어를 들을 때 항상 요한복음8:32 말씀을 떠올린다.

그리고 항상 나는 자유를 갈망한다.

우리는 예수그리스도, 삼위일체 하나님 아버지를 믿음으로 자유를 얻었다라고 말하지만 우리의 삶은 자유롭지 못하다.

책에서도 말하고 있지만 자유라는 것은 여러가지 의미로 사용되기도 하고 일련의 틀 안에서 '자유롭게' 생각하게 만드는 도구로도 사용된다.

나는 우리의 자유를 자유함보다는 자유로워지고 싶은 도구로서 우리가 그 틀안에 갇혀 있다고 생각한다.

교회가 추구하는 자유에 대한 강요받음으로 자유 안에서 자유로워지기 위해 (책의 표현을 빌려) 자신의 사적 공간을 포기한다.


2. 열정과 사랑

우리는 우리의 열정을 팔았지만 자유롭지 못하다면 나는 그 열정은 자신의 사적 공간을 포기하기 위한 열정이라고 나는 말할 것이다.

하나님은 우리에게 무조건적인 헌신과 사랑을 요구하시지 않는다.

그렇지 않다면 사랑의 하나님이라고 부를 수 없을 것이다.


3. 진리를 알지니

요한복음 8:32절의 시작 말씀이다.

진리가 우리를 자유케 하기 이전에 우리가 진리를 알아야 한다.

나는 그 진리가 어느 정도 에리히 프롬이 말하고자 하는 부분과 일맥상통 한다고 생각한다.

하나님 안에서 나 스스로를 먼저 이해하고 인정하고 낮아진 후 다른 이들을 섬기는 사랑으로....

우리가 주님안에서 진정한 자유함을 얻었으면 좋겠다.
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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